도장명장 상신당과 함께 하시면서 도장, 인장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계신지요^^
오늘은 상신당이 얼마전 말씀드린 바 있는, 고종황제의 국새를 발견한 사건에 기인하여,
도장의 역사 중에서도, 국새의 시작과 그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을 때 예방(禮房)승지 성삼문이 국새(國璽)를 붙들고 통곡하자 왕위를 사양하는 척하던 수양이 고개를 들고 노려보았다고 남효온(南孝溫)의 '육신전(六臣傳)'은 전한다. 인조반정 와중에 국새가 사라져 소동이 일었는데 새벽녘에 한 군인이 후원에서 주워 바친 사건도 있었다. 국새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 주석은 춘추 시대 변화(卞和)는 초나라 여왕·무왕(武王)에게 옥돌을 바쳤는데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국새를 사용했을까? 사마천은 '사기'에서 고조선 황실의 후계자를 태자(太子)라고 썼으니 고조선도 국새가 있었을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18/2009031801920.html발췌) |